티스토리 뷰

 


안녕하세요. 잉어남입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어릴 때 가졌던 원대한 꿈을 잊어버리고 현실에 순응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갑갑한 현실 상황에 좌절하기도 하죠. 저 또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회를 더욱 알아감에 따라 자신감이 조금씩 하락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중 일부는 어려운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오늘은 장애를 극복한 남자 프란시스코 렌티니를 소개하겠습니다. 

 

프란시스코 렌티니(Francesco. A. Lentini)는 다리가 세 개달린 남자로 과거 유명세를 떨친 인물입니다. 기생성 쌍둥이로 태어나 다리가 하나 더 있었던 렌티니.. 특이한 자신의 몸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많은 놀림을 받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쇼를 고안했던 입지전적인 인물로 기록돼 있습니다.

 

렌티니는 1889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열두 형제 중 유일하게 기형적 몸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다리가 세 개였던 거죠. 그는 태어나자마자 기형아라며 주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 일수였고 그의 부모조차 그를 무시하고 관심주지 않았습니다.

 

성장기 그는 장애아동시설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습니다. 6세가 될 무렵, 렌티니는 세 번째 다릴 어느정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도 했지만 그가 6세가 되던 시기 세 번째 다리는 성장을 멈췄고 그 다리는 다른 두 다리에 비해 15~18cm 짧게 되었습니다.

 



9세가 되던 때 렌티니는 시설에서 나와 홀로 미국으로 갔습니다. 렌티니는 미국에서 서커스 무대에 올랐고 쇼를 통해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를 통해 렌티니의 자신감은 상승했고 자신의 세 개의 다리를 이용한 축구쇼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 개의 다리로 능숙하게 드리블을 하는 그를보고 신기해 했고 그는 점차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를 보고 꿈을 갖는 장애 아동들이 생겨났고 정치인들도 그에게 후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렌티니의 자신감은 더욱더 커져갔습니다. 그는 비록 보통사람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능력과 존엄성 면에서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믿었습니다. 남들처럼 걸을 수 있고 달릴 수 있으며 점프도 가능했고 심지어 수영, 승마, 자전거를타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렌티니는 더 이상 장애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남들보다 많은 다리로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에 자서전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남들은 다리 두 개로 수영을 하지만 난 세 개로 했다. 한쪽 다리가 무슨 쓸모냐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난 그걸 방향타망 요긴하게 사용했다.”

사람들은 또한 신발을 살 때마다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간단하다. 두 켤례를 사서 한 켤례는 원래 발에 신는다. 세 번째 다리는 엄밀하게 왼쪽 다리였기에 거기에 맞는 신을 신는다. 결과적으로 오른쪽 신 하나만 남게 된다.”

잠 잘 때 세 번째 다리가 걸리적거리지 않느냐는 질문도 참 많았다.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등이나 옆구리 쪽으로 세 번째 다리를 옮긴 뒤 잠을 자면 아무 불편함이 없었다.”

 



30세에 그는 미국의 시민권을 취득했고 테레사라는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그는 테레사와 사이에 네 명의 아이를 가졌고 1966년 플로리다 자택에서 사망할 때까지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수족증을 앓았던 다른 사람들보다 긴 77년을 생존했고 그가 생전 남긴 명언들은 사후에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 개의 다리를 보고 놀란다. 하지만 만약 세상이 다리 셋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생각을 바꿔 보라. 다리가 둘 달린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갈 것인가?”

 

당신은 혹시 당신의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고,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여겨 세상에, 주변에 불평만 늘어놓고 있지 않나요? 렌티니는 자신의 장애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장애를 이용해 명성을 얻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삶이 만만치 않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렌티니처럼 꿋꿋하고 당차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